프란치스코 교황의 잦은 건강 이상 소식이 반복적으로 언론에 오르내린 끝에, 최근 가톨릭출판사를 통해 관련 서적이 출간되었다. 표면적으로는 교황의 중요 인물에 대한 책 출간일 뿐이지만, 그 이면에는 몇 가지 우려스러운 문제가 드러난다. 교황의 건강 이슈가 출판 마케팅 도구로 활용되었다는 점, 내부 인사들만 참여한 폐쇄적인 출판 구조로 객관성이 부족하다는 점, 그리고 서적의 가격 책정이 지나치게 높아 상업적 의도가 엿보인다는 점이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은 단순한 출판 활동이 아니라, 가톨릭 교회가 오랫동안 보여온 언론 장악과 대중 세뇌 전략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1. 교황 건강 이슈를 이용한 출판 마케팅 전략
최근 몇 년간 프란치스코 교황의 건강 문제가 있을 때마다 세계 언론은 이를 크게 보도해 왔다. 80대 후반의 고령인 교황은 2021년 대장 수술, 2023년 탈장 수술 등을 받았고, 심한 무릎 통증으로 휠체어를 사용하는 모습이나 폐 질환으로 입원하는 일도 있었다. 그때마다 “교황 건강 이상”, “퇴임설” 같은 자극적인 헤드라인이 반복되어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가톨릭 매체들도 교황의 건강 경과를 상세히 전하면서 신자들의 걱정과 관심을 증폭시켰다. 이러한 지속적인 보도는 교황의 안위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키는 한편, 교황에 대한 관심도를 꾸준히 높여주는 효과를 냈다.
그런데 바로 이 타이밍에 맞추어 교황의 첫 공식 자서전이 전 세계 동시 출간되었다. 원래 교황 사후에 나오기로 되어 있었다는 이 책은, 갑작스럽게 일정이 앞당겨져 가톨릭의 희년(Holy Year) 행사에 맞춰 발간되었다. 표면상의 이유는 희년 기념이지만, 그 배경을 들여다보면 교황의 건강 이슈로 높아진 관심을 놓치지 않고 활용하려는 전략적 판단이 엿보인다. 실제로 이 책 《희망》은 교황 즉위 12주년인 3월 13일에 맞춰 100여 개국에서 동시에 출간되었는데, 이는 대형 글로벌 출판 프로젝트로서 철저히 계획된 마케팅 이벤트라 할 수 있다. 마치 영화 개봉이나 IT 신제품 출시처럼, 미디어의 주목이 최고조에 달한 순간에 콘텐츠를 투입하여 최대의 효과를 노린 셈이다.
교황의 건강 문제라는 민감한 이슈가 출판 마케팅에 활용된 것은 윤리적으로도 논란의 소지가 있다. 원래 교황의 입원이나 수술 소식은 신자들에게는 기도와 걱정의 대상이어야 할 엄숙한 사건이다. 하지만 이러한 우려가 가라앉기도 전에 “교황님의 진솔한 이야기가 담긴 책이 나오니 읽어보라”는 식의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건강 이슈가 일종의 판촉 수단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건강 악화 소식→언론 보도→대중의 관심 증폭→곧바로 관련 서적 출시로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은, 결과적으로 교황의 개인적 고통이나 신자들의 염려까지 상업적 관심으로 전환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이는 종교 지도자의 권위를 이용한 마케팅이며, 신앙적 정서를 출판 사업과 교묘히 결합한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2. 내부 인사들만 참여한 불공정한 출판 구조
이번 교황 자서전 출간 과정에서 드러난 또 다른 문제는 출판 작업이 지나치게 폐쇄적으로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이 책의 집필과 번역, 편집에는 가톨릭 내부 인사들만이 대거 참여했다. 한국어판만 보더라도, 공동 역자로 이름을 올린 이재협 신부, 가톨릭 신학을 전공한 이창욱(광주가톨릭대 출신), 바티칸 뉴스 한국지부 편집자인 가비노 김 등 모두가 가톨릭 교계 인물이다. 출판사 역시 교계에서 운영하는 가톨릭출판사가 맡았다. 요컨대 기획부터 편집, 번역까지 교회 내부 사람들 손에서 이루어진 셈이다.
이처럼 내부 인력으로만 제작된 출판물은 객관성과 공정성 측면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유명인이나 공적 인물의 전기를 출판할 때는, 외부 전문가나 객관적인 시각이 개입되어 균형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 가령 역사학자나 전문 평론가의 감수, 혹은 교정 과정을 통해 내용의 사실 관계를 검증하고 다양한 관점을 반영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교황 자서전의 경우 철저히 가톨릭 교회 내부의 시각으로만 제작되었기 때문에, 불편한 진실이나 비판적 평가는 애초에 담기기 어려운 구조다. 책의 내용은 교황 본인이 쓴 것이지만, 이를 풀어내는 맥락과 어조 또한 교회에 우호적인 방향으로 해석되고 전달될 가능성이 높다.
내부 검열이나 자기검열의 위험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교황의 자서전에는 교황청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와 이미지가 담길 텐데, 이를 출판하는 사람들이 모두 교황청과 긴밀한 사이라면 자연스레 미화된 서술이 이루어질 공산이 크다. 민감한 주제나 교황에게 불리할 수 있는 부분은 의도적으로 축소하거나 빠뜨릴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는 종교를 처음 접하거나 관심이 없었던 독자들로 하여금 온전히 한쪽 입장만 듣게 만드는 효과를 낳는다. 출판물은 겉보기엔 책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실은 가톨릭 교회의 홍보물 혹은 공식 입장문과 다를 바 없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자서전이라는 이름을 통해 발간된 책은 마치 신뢰받을 수 있는 과학 콘텐츠나 진리처럼 다뤄질 것이다.
출판 과정의 공정성 측면에서 보자면, 이러한 폐쇄성은 출판 윤리에도 어긋난다. 출판은 지식과 기록을 남기는 일이기에 비판적 검토와 다양한 시각의 수용이 중요하다. 특히 공적인 관심을 받는 지도자의 이야기라면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이번 사례에서는 교회 내부 인사들만의 폐쇄적 울타리 안에서 책이 만들어짐으로써, 독자는 미처 알지 못한 채 교회 측이 선별한 정보만 접하게 되는 상황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이 책은 내용과 제작 과정 모두 가톨릭 교회가 직접 통제한 정보의 산물이며, 이는 독자 입장에서 볼 때 공정한 출판이라기보다는 철저히 관리된 출판이라고 할 수 있다.
3. 책 가격 문제와 상업적 의도
교황의 자서전 《희망》에 제기되는 세 번째 문제는 가격 책정이다. 이 책의 정가는 무려 34,000원으로, 일반 단행본과 비교해 상당히 높게 매겨졌다. 물론 양장본이거나 분량이 많다는 이유도 있을 수 있지만, 국내 출판 시장의 관행을 보면 이 가격은 이례적이다. 비슷한 분량이나 지적 무게를 가진 다른 책들과 비교해 보면 그 차이는 더욱 분명해진다. 예를 들어 현대 과학 교양서의 고전으로 꼽히는 《이기적 유전자》(리처드 도킨스 저)는 정가가 약 20,000원 선이고, 퓰리처상 수상작인 784 페이지에 달하는 《총, 균, 쇠》(재레드 다이아몬드 저)는 특별 양장판이 아닌 보급판 기준으로 2만 9천원 정도이다. 천문학과 인문학을 아우른 명저 《코스모스》(칼 세이건 저) 역시 정가 2만원 남짓에 판매된다. 이밖에도 많은 베스트셀러와 양서들의 가격대는 통상 2만 원대가 주류를 이룬다. 이러한 시장 상황과 비교할 때, 비과학적 도서인 교황 자서전에 매겨진 3만4천 원이라는 가격은 눈에 띄게 높은 프리미엄 가격이다.
이처럼 높은 가격 책정에는 가톨릭 출판사의 상업적 의도가 깔려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반적인 수요 법칙상 책 가격이 높으면 판매량에 악영향을 주기 마련이지만, 이 경우에는 충성도 높은 신자층을 겨냥했기 때문에 가능한 전략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가톨릭 신자들은 교황 관련 서적이라면 다소 비싸더라도 마음으로 기꺼이 구매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가격 허들을 높게 설정했다는 뜻이다. 교황의 말씀이나 삶이 담긴 책을 구입하는 행위는 신앙인들에게는 단순한 소비 이상일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이를 신앙의 연장선으로 받아들이거나, 교회에 대한 지원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이러한 심리를 활용하여 최대한의 수익을 창출하려는 유인이 생긴다.
문제는 이러한 접근이 종교의 순수성과 상업적 이익 추구를 뒤섞는 결과를 낳는다는 점이다. 신자들의 신앙심을 이용한 수익 모델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책 한 권 가격으로 3만 원대를 책정했다는 것은,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은 신자들에게는 상당한 부담일 수밖에 없다. 지식과 영성을 전파해야 할 책이 오히려 장벽이 되어버린 셈이다. 정말로 교황의 메시지를 널리 알리고자 했다면, 좀 더 많은 이들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합리적인 가격이나 보급판 제안도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배려보다는 실제적으로 돈을 밝히는 바티칸에서 프리미엄 전략을 택한 것은 이 출판 기획에 돈벌이 의도가 깔려 있음을 의심케 한다.
4. 가톨릭의 언론 장악 및 여론 조작의 역사
프란치스코 교황 건강 이슈와 자서전 출간을 둘러싼 일련의 전략은, 가톨릭 교회가 역사적으로 보여온 언론 관리 행태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가톨릭 교회는 오랜 세월 동안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정보를 통제하고 여론을 형성하는 데 힘써 왔다. 이는 비단 현대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며, 중세부터 이어져 내려온 전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먼 과거를 돌이켜보면, 교회는 출판과 지식 전파를 엄격히 통제했다. 중세 유럽에서 성경을 비롯한 종교 서적은 라틴어로만 작성되고 성직자들에 의해서만 해석되도록 함으로써, 지식의 접근을 제한했다. 활판인쇄기가 발명되고 지식이 급속히 확산될 조짐을 보이자, 가톨릭 교회는 16세기부터 금서 목록(Index Librorum Prohibitorum)을 작성하여 신자들이 읽어서는 안 되는 책들을 지정하고 검열했다. 교리에 반하거나 교회의 권위를 흔들 수 있는 사상들은 출판 자체를 금지시켜, 정보의 유통을 근본적으로 차단한 것이다. 이런 강력한 통제는 20세기 후반까지도 이어졌을 정도로, 교회는 오래도록 사상의 자유시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언론과 미디어를 활용한 여론 형성 전략도 일찍부터 조직화되었다. 1622년 교황 그레고리오 15세는 ‘신앙전파성성(Propaganda Fide)’이라는 조직을 창설했는데, 이것은 가톨릭 교리를 체계적으로 선전하고 개신교 종교개혁에 대응하기 위한 기관이었다. 이 기구의 이름에서 오늘날 ‘프로파간다(선전, propaganda)’라는 말이 유래했을 정도로, 가톨릭 교회는 일찌감치 매스커뮤니케이션의 힘을 활용하여 체계적인 이미지 관리와 여론전을 펼쳤다. 즉, 가톨릭은 스스로의 가르침을 널리 퍼뜨리는 동시에, 자신들에게 비판적인 목소리는 억누르거나 무력화하는 양면 전략을 구사해왔던 셈이다.
근현대에 들어와서 교회의 미디어 전략은 더욱 정교해졌다. 교황청은 공식 언론 창구인 바티칸 신문(Osservatore Romano)과 바티칸 방송(Vatican Radio)을 운영하며 전 세계 가톨릭 소식을 자체 프레임으로 전달한다. 각국에도 가톨릭신문, 가톨릭방송 등 교계 언론이 자리잡고 있어서, 신자들은 교회 내부 시각이 담긴 뉴스를 손쉽게 접할 수 있다. 이런 자체 미디어망을 통해 교회는 긍정적인 소식(교황의 미담이나 교회의 자선활동)은 강조하고 널리 퍼뜨리는 반면, 부정적인 이슈(교회 내 논란이나 비판)는 축소하거나 아예 언급하지 않는 방식으로 여론을 관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가톨릭 내부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교계 매체들은 이를 상세히 다루기보다는 교황이나 주교단의 공식 입장만 짧게 전하거나 조용히 넘어가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교황이 행한 감동적인 행동(예컨대 가난한 자 세족례 등)은 반복적으로 조명하여 신자들의 신뢰와 존경심을 고취시킨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건강 문제 역시 이러한 언론 플레이의 맥락에서 볼 수 있다. 교황청과 가톨릭 매체들은 교황의 입원 사실을 알리면서도 곧바로 회복 중이라는 메시지나 “퇴임은 고려하지 않는다”는 교황 본인의 발언을 강조했다. 이를 통해 신자들에게 “걱정되지만 크게 동요할 일은 아니다”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이어서 나온 자서전 출간 소식은 자연스럽게 관심의 흐름을 “교황님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직접 읽어보자”는 방향으로 전환시켰다. 건강 문제로 인한 불안과 궁금증을, 교황의 삶과 생각을 담은 책으로 해소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이는 교황과 교회에 대한 여론을 관리하는 절묘한 수순으로 보인다. 먼저 우려를 환기시키고(건강 이슈), 다시 안심과 존경으로 마무리짓는 콘텐츠를 투입(자서전)함으로써, 신자들이 끝까지 교회가 마련한 공식 내러티브 안에서 사고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패턴은 가톨릭의 대중 세뇌 전략이라는 비판까지 나오게 한다. 세뇌라는 단어가 다소 극단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정보 공급원이 제한되고 동일한 메시지가 반복될 때 사람들은 비판 없이 그것을 받아들이게 되기 쉽다. 가톨릭 교회는 오랜 시간 자신들의 미디어를 통해 일방향으로 정보를 제공해왔고, 신자들은 교회가 전하는 말을 진리로 신뢰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렇다면 교회 측 메시지가 의도적으로 편향되어 있을 때, 신자들은 그 편향을 인지하지 못한 채 그대로 믿게 될 위험이 있다. 이것이 바로 정보 독점이 가져오는 대중 설득, 나아가 세뇌 효과다. 이번 교황 자서전 사례에서도, 교회는 건강 문제라는 민감한 이슈를 자체적으로 관리하고 이어서 출판물을 통해 여론의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신자들이 교회가 마련한 틀 내에서 사고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는 정보의 선순환이 아닌 교회 주도의 닫힌 회로(closed circuit)에 가깝다.